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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사연 많은 한강다리…이름 두고 지역갈등된 이면

시간:2024-03-29 07:35:03 출처:레인보우웨이브뉴스 작성자:패션 읽기:868次

[논&설] 사연 많은 한강다리…이름 두고 지역갈등된 이면

김재현 기자
김재현 기자기자 페이지
서울 마포대교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설치된 펜스와 문구. 2018.1.23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 마포대교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설치된 펜스와 문구. 2018.1.23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논설위원 = "마포대교는 무너졌나?"

조승우 주연의 영화 '타짜1'에서 사채업자 곽철용(김응수 분)이 죽기 직전 내뱉은 명대사다. 이 건달 두목을 태우고 가던 운전기사가 "회장님, 올림픽대로가 막힐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핀잔을 준 것이었다. 영화 대본에 없던 속칭 '곽철용 드립'은 앞서 그가 도박판에서 던진 "묻고 더블로 가!"와 함께 SNS에서 대유행하며 김응수에게 광고 대박을 안겼다. 2019년, 영화 개봉 13년 만의 일이었다. 최불암을 잇는 '국민 아버지'가 꿈이었던 김응수가 오지명에 버금갈 꼰대 개그 캐릭터로 뜨는 사이 '의문의 1패'를 당한 건 마포대교였다. 무너진 다리라면 성수대교인데 감독은 왜 마포대교를 썼을까? 올림픽대로가 막히니 마포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로 가자는 뜻이었겠지만, 대중은 마포대교에 덧씌워진 오명에 주목했다. 한강 다리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한 사람 3명 중 1명은 마포대교를 찾는다. 한강다리가 어느새 32개가 됐지만 '투신 순위'는 수십년째 그대로다.

마포대교는 1970년 개통 당시 '서울대교'였다가 한강개발사업이 본격화된 1984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준공 순서에 따라 명칭에 번호가 들어간 제1, 2, 3한강교는 그때 한강, 양화, 한남대교로 각각 개명됐다. 한강 다리명에 동네가 들어가고 큰 대(大)자가 붙은 건 '서울'로 출발한 마포대교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서울대교 이후 한강 다리명에는 동네가 붙었다. 잠실대교부터 영동, 천호, 행주, 성수, 성산, 원효, 반포, 당산(철교), 동작, 동호대교까지 그랬다. 다리명이 주소지와 다르거나 중도에 바뀐 경우도 있다. 성수대교는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지만, 관할 주소는 성동구 옥수동이다. 동호대교는 원래 '금호대교'로 계획됐다가 옥수동 강변의 옛 지명인 동호(東湖)로 개통됐다. 다리에 지명을 붙이는 전통은 1989년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는 다리가 '올림픽대교' 간판을 달고 개통되면서 깨지게 된다.

1950년 파괴된 한강인도교 아래 임시다리로 한강 건너는 피난민들. 2016.6.19 [국가기록원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1950년 파괴된 한강인도교 아래 임시다리로 한강 건너는 피난민들. 2016.6.19 [국가기록원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강다리에는 많은 애환이 서려 있다. 북한의 남침 나흘째인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께 한강의 첫 교량인 한강인도교가 폭삭 주저앉았다. 북한 인민군이 수도 서울의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미아리 고개를 넘자 국군이 북한의 한강 도하를 막으려고 다리를 폭파한 것이다. 대통령 이승만이 미리 대전으로 피신한 줄 모르고 있던 서울 시민들은 안심하고 있다가 살육이 난무하는 생지옥에 갇혔다. 전후 제1한강교로 복구된 이 다리는 1961년 5월16일 새벽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쿠데타군의 선봉 해병대가 헌병들의 저지선을 돌파한 다리로도 역사에 기록돼 있다. 1994년에는 성수대교가 붕괴되면서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한강의 기적'을 무색하게 만든 후진국형 참사였다.

건설 중인 구리와 고덕을 잇는 다리
건설 중인 구리와 고덕을 잇는 다리

[촬영 안철수] 2022.04.24

33번째가 될 한강다리의 이름을 놓고 이웃한 자치단체 사이에 세대결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 말 개통을 앞두고 '구리대교'로 하자는 구리시와 '고덕대교'로 하자는 강동구가 한판 붙은 것이다. 구리시는 "교량의 대부분이 구리시에 있다"며 "인근에 강동대교가 있어 강동구에 주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반면 강동구는 "원래부터 고덕대교였는데 구리시가 끼어들었다"며 "인근에 구리암사대교가 있어 혼란을 준다"고 주장한다. 양측은 정치권을 찾아 압박 작전을 펴고 서명 운동도 불사하고 나섰다. 2009년 개통된 미사대교 명칭 논란과 판박이다. '덕소대교'로 하자는 남양주시와 '미사대교'로 하자는 하남시의 주장이 끝까지 맞섰는데 국토부 지명위원회의 투표 끝에 '미사대교'로 정해졌다.

다리명이 지역 갈등이 된 이면에는 땅값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건설업체들의 말이다. 다리에 동네명이 들어가면 '교통이 편리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아파트값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깊은 상처에도 마포, 성수대교 인근이 부촌이 된 것에서 보듯 일리 있는 얘기다. 현실이 이러하니 구리암사대교(2014년 개통)처럼 양쪽 다 쓰자는 주장도 나온다. '구리대교'로 하자는 구리시와 '암사대교'로 하자는 강동구 싸움에 낀 지명위가 내린 절충안이었다. 그러나 양측은 이번만큼은 과거와 같은 절충은 없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치는 모양새인데, 아름다운 한강을 바라보면서 이런 벼랑 끝 승부를 벌여야 하는지 씁쓸할 따름이다.

jahn

(책임편집:탐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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